환자 생명을 볼모로 고가의 약가협상을 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비인도적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젠 약가협상 중에 공공연하게 공급중단 가능성을 내비춰 환자로 불안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협상력과 보건복지가족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의 약가 조정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비윤리적 약가협상으로 최근 문제가 되었던 다국적 제약사가 로슈와 노보노디스크이다. 로슈는 '푸제온' 공급중단으로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처하게 만들었고 노보노디스크는 뇌수술 후 혈우병 진단을 받은 아이에게 '노보세븐'이 적시에 공급되지 않아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게 만들었다.

환자의 생명줄과 같은 필수의약품 공급에 있어서 환자의 이러한 비극적 상황은 의약품 공급 독점에 무능력한 정부와 공급 독점력으로 환자의 생명을 고가의 약가를 받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다국적 제약사의 협상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지난 20일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혈우병치료제 ‘노보세븐’의 약가를 평균 33.2% 인상하는 조정결정을 하였다. 이로 인해 혈우병 환우들의 ‘노보세븐’ 공급중단 불안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어 천만다행이다. 다만,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번 약제급여조정위원회의 ‘노보세븐’ 약가 조정결정의 후폭풍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약가인상조정신청으로 평균 33.2% 약가를 인상시킨 이번 노보노디스크의 ‘노보세븐’ 약가협상 과정을 시청각적 교재로 삼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인상조정신청을 줄줄이 할 것이고 앞으로 의약품 공급중단 카드를 약가협상의 주무기로 사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환자 생명을 담보로 하는 다국적 제약사의 약가인상 횡포는 단지 에이즈나 혈우병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혈병, 신장암, GIST, 뇌종양, 강직성척추염, 재생불량성빈혈, 혈관질환 등 모든 환자의 문제이다.

이번 ‘노보세븐’ 약가 협상 및 조정 과정을 바라보며 환자단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약가가 얼마인가?’ 때문이 아니다. 환자입장에서는 약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다국적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의약품 공급거부로 인한 혈우병 환자들의 불안을 약가인상을 위해 이용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환자가 그 약을 먹고 살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환자의 생명보다 우선될 수 있는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혈우병 환자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생사의 기로에서 살기 위해 정부를 향해 ‘노보세븐’의 신속한 공급을 요구하며 싸운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정부는 처음부터 혈우병 환자들이 이러한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조치했어야 했다. 정부의 직무유기이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더 나쁘다. 이들은 처음부터 환자의 생명보다는 이윤의 증대를 우선시켰고 노보세븐의 공급 중단을 무기로 혈우병 환자들을 계속적으로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질환의 환자들은 자신도 언제든지 혈우병 환자와 같은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비통함을 느껴야 했다.

이제 환자단체들은 환자 생명을 이윤 증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다국적 제약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제약사, 정부, 국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다국적 제약사는 더 이상 약가 협상 및 조정 과정에서 필수의약품 공급거부를 협상무기로 사용하여 환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마라.

둘째, 정부와 국회는 필수의약품에 대한 제약사의 공급거부를 방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를 속히 마련하라.

2009년 7월 22일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뇌종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강직성척추염협회, 한국재생불량성빈혈환우회, 한국혈관질환자단체,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암시민연대